아이의 손을 잡고, 낯선 교문 앞에 서다
해외에서의 삶은 늘 기대와 두려움이 교차합니다. 하지만 그 감정이 가장 진하게 다가오는 순간은 단연, 아이와 함께 맞이하는 첫 번째 학교 등굣길입니다. 새로운 도시, 낯선 언어, 생소한 교문 앞에서 저는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있었습니다. 그날, 아이보다 더 긴장한 사람이 바로 저였습니다.
싱가포르는 교육 수준이 높기로 유명한 나라입니다. 체계적인 커리큘럼, 국제적인 환경, 안전한 학습 분위기 덕분에 많은 부모들이 이곳을 자녀 교육의 기회로 삼습니다. 저 역시 그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훨씬 복잡했습니다. 특히 공립학교 편입은 단순히 시험을 치르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한 아이가 새로운 세계에 던져지는 일, 그 자체였습니다.
왜 공립학교를 선택했는가
싱가포르에는 훌륭한 국제학교들이 많습니다.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과 함께 영어 중심 교육을 받을 수 있고, IB나 IGCSE 같은 국제 커리큘럼도 잘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공립학교를 선택했습니다.
공립학교는 단지 ‘비용이 저렴하다’는 이유만으로 선택하기엔 너무나도 강력한 교육적 철학을 담고 있습니다. 싱가포르의 공교육은 단지 학문적 성취를 넘어서, 공동체 속에서의 역할과 다양성에 대한 이해를 자연스럽게 배웁니다. 현지 친구들과의 부딪힘 속에서 얻는 사회성, 진짜 싱가포르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 그것이 우리에겐 더 큰 가치였습니다.
하지만 공립학교의 문턱은 결코 낮지 않았습니다. 특히 외국인 아이들에게는 ‘AEIS’라는 관문이 놓여 있었습니다.
AEIS, 그것은 단지 시험이 아니었다
AEIS(Admission Exercise for International Students)는 외국 국적 학생들이 싱가포르 공립학교에 편입할 수 있도록 마련된 시험 제도입니다. 일반적으로 매년 9~10월에 진행되며, 수학과 영어 두 과목으로 구성됩니다.
시험의 구성과 특징
- 수학: 비교적 명확하고 객관적인 문제 중심. 시각적 사고 강조.
- 영어: 문법, 독해, 작문을 아우르는 종합 언어 평가. 문화적 문해력 중요.
우리 아이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상위권이었기에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문제는 단순한 실력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문제의 구조, 언어의 뉘앙스, 사고방식의 차이까지… 모든 것이 새로웠습니다.
시험 준비, 그 이상의 여정
우리는 약 6개월 동안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영어는 온라인 튜터와 매일 1시간씩 공부했고, 수학은 싱가포르 문제 풀이법에 익숙해지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준비보다 더 어려운 것은 아이의 마음이었습니다.
“엄마, 나는 왜 시험을 잘 봐야 친구가 생기는 거야?”
그 말이 마음 깊이 남았습니다. 우리는 아이를 위해 결정했고, 그 길을 최선이라 믿었지만, 정작 아이의 감정은 점점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 우리는 ‘시험에 합격하는 것’이 목표가 아닌, 아이의 마음을 지켜주는 일을 중심에 두기로 했습니다.
부모의 마음, 아이의 자리
공립학교 편입을 준비하며 제가 배운 가장 중요한 교훈은 ‘기다림’이었습니다. 아이는 천천히, 그러나 깊게 변해갑니다. 우리는 조급했고, 아이보다 먼저 앞서가려 했습니다. 교육은 ‘같은 속도로 걷는 여정’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결국 우리 아이는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의미 있었던 것은, 그 과정이 가족 모두에게 성장의 시간이 되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시험은 통과했지만, 그보다 더 큰 성취는 서로를 더 이해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다음 이야기 예고
다음 편에서는 공립학교 배정 이후의 실제 적응기를 나누려 합니다. 수업을 이해하지 못해 멍하니 앉아 있던 아이가 어떻게 친구를 사귀고, 어떤 방식으로 수업을 따라가기 시작했는지를 담아보겠습니다. 그리고, 부모는 그 옆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었는지도요.
혹시 지금, 당신도 아이와 함께 낯선 교문 앞에 서 있지 않나요?
그렇다면, 함께 이 여정을 나누어 보지 않겠습니까?